
MBC 특집 100분 토론 위기의 한국사회 해법을 묻다 (성장경 사회, 2025.2.19)에서 화면 갈무리
12.3 내란의 파동 속에서 윤석열 탄핵 여부를 두고 만인의 촉각이 곤두서있는 가운데, 느닷없이 보수 진보 개념을 둘러싼 논쟁이 일고 있다. 상속세 기준(세율은 건드리지 않는, 상속세 부과의 상속재산가액 기준)을 완화하는 등, 이른바, ‘우클릭’ 행보를 보이는 가운데, 민주당대표 이재명이 “우리는 진보가 아니다”, “국힘당이 보수냐. 민주당이 그 자리를 차지해야 된다”, “민주당이 중도 보수로 오른쪽을 맡아야 한다”, “지금같이 성장이 위축된 상황에서는 분배조차 제대로 될 수 없으니, 성장을 도모하고 실용을 추구하자” 등 발언을 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이재명의 발언에 대해 민주당 안팎에서 비판이 일었다.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장 임종석이 다소간 각을 세우고, “민주당은 중도보수 정당이 아니다”, “이것을 용인하면 앞으로 숱한 의제에서 물러서야 할지 모른다”, ”설익은 주장은 분란을 만들 뿐이고 장차 진보진영과의 연대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이는) 실용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고 대표가 함부로 바꿀 수 없는 문제”,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 성장과 복지의 균형, 환경과 생명, 시장 방임이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해 온 민주당이 어찌 중도보수정당이겠느냐” 등 의견을 냈다.(프레시안, 2025.2.21.)
다른 한편, 국힘당 원내대표 권성동은 “사실상 두 길 보기 정치 사기”, “양다리 걸치는 기회주의”, “지난 2016년 이 대표는 중도를 비판하며 ‘정체성 잃고 애매모호하게 왔다갔다하면 오히려 의심 받는다”, “(이재명 자신이) 중도는 부패 기득권의 은폐용 갑옷’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 이재명 자신이 과거 자신의 발언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중도 타령으로 민주당 내부에서 의심을 받고 있으며, 자신의 정치적 극단주의를 중도란 언어로 은폐하려 한다”고 매도했다.(프레시안, 2025.2.21.)
임종석과 권성동의 비판적 발언은 결은 다르지만, 이재명 발언의 취지를 다소간 왜곡 과장한 점에서 공통성이 있다. 한편으로 임종석은 이재명의 ‘중도보수’ 발언이 ‘성장과 복지의 균형’을 파괴하자고 한 것처럼 왜곡했다. 그러나 이재명은 복지를 저버리고 성장을 추구하자고 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성장이 위축되어 있으니, 성장이 되어야 분배할 것이 있지 않겠느냐 했기 떼문이다.
임종석은 “이 대표는 자신이 사실과는 달리 좌파 혹은 진보로 인식되고 있다는 불편함이 있어 보인다. 그 불편함이 '우클릭 강박관념'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우클릭은 정답이 아니다. 지금 민주당의 리더십에 필요한 것은 신뢰감과 안정감”이라고 했다.
이재명이 제시한 실용과 성장은 이른바 ‘민생을 위한 경제(먹사니즘)’와 연계되어 있는 것이나, 임종석은 이것을 ‘민주당을 위한 신뢰와 안정감’으로 치환해 버렸다. 주체를 치환했을 뿐 아니라, 임종석은 민생의 문제를 추상화하여 신뢰와 안정감으로 변질시켜 버렸다. 후자는 선거에서 표를 얻는 데 유리하다 믿은 것이 명약관화하다. 임종석에게 초미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민주당이 표를 더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표가 민생에 우선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다른 한편, 권성동은 이재명이 천명한 ‘중도보수’ 노선을 ‘우익 보수’로 확대해석한 오류를 범했다. “최근 민주당의 정치구호는 성장인데, 입법활동은 변함없이 규제 일변도다”, “민주당이 이처럼 모순적인 행태를 보이는 목적은 오로지 선거(를 노린 것이)다. 앞으로는 성장을 외치면서 중도층을 공략하고, 실제로는 규제를 남발하면서 좌파 세력을 달래보려는 것” 등으로 매도한 것이 그러하다.
구체적 사례로, 권성동은 민주당이 발의한 상법개정안(충실의무 대상을 이사에서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안)에 반대하여, 국힘당에서 자본시장법 개정안(기업 인수합병이나 물적분할 과정에서 주주의 이익 보호 관련 안)을 발의했다고 한다. 또 국힘당이 발의한 재개발·재건축 촉진법에 대해서도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재명의 경제 기초 상식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재건축·재개발을 하지 못하도록 대못을 박겠다는 정당이 중도 보수를 입에 올릴 자격이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이렇듯, ‘중도보수’ 입장의 천명을 두고 이재명이 양쪽에서 협공을 받고 있다. 한편에서 임종석이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포기한 것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권성동이, 민주당의 정치구호는 성장이지만, 입법활동은 변함없이 규제 일변도(좌클릭)라고 매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재명의 ‘중도보수’란, 진보도 보수도 아닌 바에야 중도라 일컬음이 합당할 것임에 틀림없다고 하겠다. 임종석에 따르면 진보가 아니고, 권성동에 따르면 보수도 아니라고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도보수나 중도진보는 크게 중도에 속하는 것이므로, ‘중도 보수’를 천명하는 것이 무슨 경천동지할 일이 아닌 것이다.
중도보수란 성격 규정 자체가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고 볼 때, 임종석과 권성동 등의 비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첫째, 이들의 이재명에 대한 공격은 ‘중도 보수’라는 개념 자체가 아니라, 이재명이란 인물 자체를 표적 삼은 것이라는 점, 둘째, 다수의 민생을 걱정하기보다, 민주당이 신뢰감, 안정감을 얻음으로써 그 표를 불리자고 하는 것이거나(임종석). 소수의 가진 자를 위한 정책을 강변하기 위한 것(권성동)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중도 보수’ 발언이 야기한 담론의 핵심은 좀더 근원적인 데서 찾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진보, 보수, 중도보수 등의 개념 자체가 이렇다 할 실질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들 개념은 절대적인 기준이 없고, 입장과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 상황이다. 이재명도 상속세 완화를 두고, 이것은 보수나 진보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라 규정한 적이 있다.
이재명이 제시한 성장, 실용의 개념도 허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떤 것을 성장으로 보고, 실용으로 볼 것인가 하는 기준이 보는 관점, 입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론은, 편가르기에 이용되는 진보, 보수, 중도보수의 꼬리표는 물론, 실용, 성장 등 아무 구체성 없는 추상적인 개념을 두고 전개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담론은 누가 어떤 내용을 실용, 성장의 개념에 채워 넣을 것인가 하는 주체와 방법의 문제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임종석에게는 그 주체가 시장 방임을 허용하지 않는 정부이고, 권성동의 경우에도 그같이 국회와 정부가 간여하되, 노동자의 이해에 반하는 기업 우선 혹은 부익부를 지향하는 쪽에 있다.
중도진보 혹은 중도보수 어느 쪽이든 무관하게 그 지향성에서 민주당이 국힘당과 대립할 때, 결론은 어떻게 도출하나? 다수결로 하지 않으면, 달리 뾰족수가 없다. MBC 100분토론(성장경 사회, 2025.2.19.)에서 이재명은, 국힘당이 무조건 반대하니, 밤에 국힘당, 민주당이 서로 술이라도 먹고 소통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재명은 이것이 농으로 하는 말이라고 퉁치고 넘어가려 했지만, 반드시 농으로 치부할 것도 아니다.
다수당이 되고도, 허구한 날 양당의 화합과 소통을 민주당 자체에서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수박’으로 분류된 이들 가운데 이런 경향이 더 노골적이다. '국회 내에서 화합'하라고 노래처럼 외는 것은 양당 간에 야합(짬짜미)하라고 추동하는 것이다. 현실이 그러하다. 이런 관행은 다수당을 무력화하는 것이고, 그래서 민심을 배반하는 것이다.
양당 간 야합의 풍토를 척결하는 방법은 국회 위에 국민투표를 제도화하는 길밖에 달리 없다. 국민투표는 대통령이나 국회가 제시하는 것에 수동적으로 응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능동적으로 발안하는 것도 포함해야 한다. 일종의 사단법인에 불과한 정당은 편의상 의제적으로 국민을 대표할 수는 있으나, 그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명색이 민주국가라는 곳에서 발생한 12.3 친위 쿠데타는,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 아니라, 대책없는 국회의 정쟁에 편승한 것이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닫힌 국회가 국민과 국회 위에 공히 군림하여 독재자의 길을 트려고 했던 윤석열을 낳은 원흉이다. 닫힌 국회와 독재자의 탄생은 같은 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닫힌 채 질곡에 처한 국회가 거꾸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명분으로 더 많은 권력을 쥐려고, 내각제, 총리제를 운운하고 있다.